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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동문을 찾아서

제 468호 2017년 03월 (2017-03-16)

이홍구 서울국제포럼 이사장(전 국무총리) 인터뷰

“대선 후보들, ‘총리 국무위원제청권’ 헌법조항 준수 공약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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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후보들, ‘총리 국무위원제청권’ 헌법조항 준수 공약해야”

이홍구 서울국제포럼 이사장(전 국무총리)

대선을 앞두고 어수선한 정국이다. 꼬여있는 실타래를 풀 리더는 누구일까. 지난 2월 17일 이홍구(법학53입) 서울국제포럼 이사장을 만나 답을 청해 들었다. 이 동문은 ‘풍부한 학식과 경륜을 갖췄다’는 말이 잘 어울리는, 여야 모두에서 존경받는 우리 시대 원로다. 20년간 모교 정치학과 교수로 지내다 1988년 통일원 장관 부임 후 부총리, 국무총리, 당 대표, 주영대사, 주미대사 등을 역임했다.


대담 : 김진국 중앙일보 대기자 (본지 논설위원, 사진 왼쪽)


-내부 갈등이 심각합니다.
“그 이야기를 하기 전에 동창회원들께 저에 대해 설명드릴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정부에 들어가기 전 20년간을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로 있다 보니 많은 분들이 정치학과 동창으로 여기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저는 6·25전쟁 중 부산 가교사 시절 법대 법학과에 입학해 1년 공부하고 서울 본교사로 돌아온 직후 미국 유학을 떠났습니다. 이렇게 동창신문과 인터뷰를 하게 되니 그런 이유로 조금은 계면쩍어 드리는 말씀입니다.”

자연스럽게 첫 질문에 대한 답변은 뒤로 미루고 학창시절 이야기로 이어졌다.

-짧지만 당시 기억에 남는 일이라면 뭐가 있으세요.
“1953년 6월 휴전반대 데모에 참여한 일이 생각납니다. 판문점에서 휴전협정 회담이 진전될 무렵인데, 전쟁통에 사람도 많이 죽고 국토가 파탄이 났는데 그냥 흐지부지 휴전으로 끝내려는 데 대해 ‘이건 아니다’라는 감정에서 도청 앞 휴전반대 데모에 참여했었지요.

다른 하나는 1953년 가을, 경남 마산에서 전국체육대회가 열렸어요. 고교시절 배구선수로 활약했었기에 급조된 서울대 배구부에 참여하여 서울대표로 전국체육대회에 나가 준우승을 하기도 했습니다. 경남대표로 나왔던 해군사관학교가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당시 유학이 쉽지 않았을 텐데요.
“1953년 휴전 이후 미국에서는 한국학생을 도와야 한다는 여론이 생겼던 것 같습니다. 그 덕분에 예일대, 하버드대를 비롯한 여러 대학에 유학의 기회가 주어졌지요. 마침 전쟁 전부터 미국 조지아주립대에 유학 중이던 사촌누님으로부터 ‘여기 목사님 도움으로 에모리대에 장학생으로 올 수 있을 것 같다’는 소식이 왔습니다. 개성 분으로 집안의 오랜 친지이셨던 최규남 총장님께 조언을 구했더니 좋은 기회라고 유학을 적극 권하셔서 가게 되었습니다.”

-모교에 오신 게 1968년이죠.
“에모리대를 졸업하고 예일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죠. 꽤 오래 미국에 있었습니다. 1968년 한국에 돌아와 서울대 최문환 총장께 인사드리러 갔더니 ‘잘 왔다, 자리를 마련해 보겠다’고 하세요. 첫 해 행정대학원에서 강의를 시작해 20년을 서울대에 있었습니다.”

-책장에 대학신문 합쇄본이 꽂혀 있는데 인연이 있으세요.
“1968년 학교에 갔을 때 대학신문 편집국장이 구범모 선생이셨어요. 구선생이 1972년 국회로 가시기 전까지 대학신문을 맡으셨고 뒤를 이어 김영국(정치49-54) 선생이, 그리고 관악캠퍼스로 이전한 직후에 그 자리가 제게 이어져 몇 년간 지도교수를 했지요. 학생편집장이 신봉길(외교74-79 전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장) 대사였고, 대학원 조교로 장달중(정치65-69) 교수가 도왔습니다.”

이 동문은 1988년 노태우 정부의 부름을 받고 통일원 장관에 부임하며 학교를 떠났다. 장관 퇴임 후 다시 학교로 돌아올 수 있었지만 교수직을 내려놓고 후학들에게 길을 열어 주었다. 2000년 주미대사로 공직을 떠나기까지 12년간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정부에서 장관, 부총리, 민주평통수석부의장, 국무총리, 대사로 끊임없이 일했다. 교수재직 시 설립을 주도한 서울국제포럼은 지난해 30주년을 맞았다.


“이번 선거에서 국민들은 각 당 공약 자세히 살펴보길”
서울대 배구부 선수로 전국체전 준우승 한 적도 있어


“미국에서 오래 공부한 영향으로 국제정세에 관심이 많았어요. 세계정치학회(IPSA) 등 국제회의에도 열심히 참석했습니다. 1979년 당시는 소비에트연방이었던 러시아에서 세계정치학회가 열렸는데, 수교가 없던 우리나라의 정치학자들도 초청이 돼 몇몇 정치학회 회원들과 모스크바를 갔었어요. 모스크바올림픽이 개최되기 전이라 많은 나라에서 참여하길 바라고 있었지요. 처음으로 가본 공산주의국가에서 세상이 변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이미 1975년 스페인이 민주화 되고 연이어 포르투갈, 그리스를 넘어 라틴아메리카에서도 민주화 바람은 불고 있었습니다. 1980년 여름 이탈리아 피렌체의 유럽정치학연구소에서 민주화에 대한 많은 토론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렇듯 민주화의 물결이 거세지는 것을 보면서 냉전종식의 시간이 머지않은 것 같다는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었어요.

우리도 더 늦기 전에 냉전 이후와 민주화에 대비해야 되겠다는 생각으로 한국에 돌아와 뜻을 같이하는 교수들과 만든 단체가 ‘서울국제포럼’입니다.”

-첫 질문으로 돌아와 보죠. 난국을 헤쳐 나갈 리더십이 절실한 상황입니다.
“시민의식의 향상도 필요하지만 결국 정치가 중요합니다. 무엇보다도 협치의 제도화와 관행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도자들이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서는 다른 입장이나 세력과도 협력하고 수용하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합니다. 또 갈 데까지 간다는 극한의 대결구도를 지양하고 국가에 대한 무한책임을 갖는 자세를 보여야 합니다.

극한의 대결구도로 맞서고 있는 지금의 사태에서 참고 될 만한 회고담을 하나 하지요. 제가 통일원 장관으로 있던 1988년의 13대 국회는 가장 민주적이고 생산적인 국회였습니다. 압도적인 여소야대 국면이었지만 그때 만들어진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습니다. 네 당(민정당, 평화민주당,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의 합의로 이뤄졌기 때문이지요.

제가 김대중 정부에서 주미대사로 일했던 것도 김대중 대통령의 간곡한 설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환란 극복을 위해 미국의 도움이 절실한 상황에서 여야가 뭉쳐 IMF를 극복하려는 의지를 미국에 보여주는 게 중요했어요. 김대중 대통령이 IMF사태에 대한 지난 정권의 책임을 묻는 차원을 넘어서야겠다는 판단을 한 것이지요. 당시 우리당(신한국당)에서는 비판을 받았지만 나라가 처한 위기를 극복하려면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떠났습니다.”

그는 판단력을 리더의 가장 중요한 자질로 손꼽았다.

“1987년 헌법개정 때 모델이 프랑스 제5공화국헌법이었습니다. 프랑스에서 제5공화국헌법이 채택되고, 1959년 1월 8일 샤를 드골(Charles de Gaulle)이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 프랑스는 유럽에서 강력한 국가로 되돌아왔습니다. 프랑스에서 대통령제가 성공적으로 정착한 것은 드골이란 큰 지도자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돌이켜보면 우리도 1987년 헌법개정 이후 초반의 세 대통령이 그나마 잘했던 것 같습니다. 그 과정에 JP라는 걸출한 정치인의 역할도 컸고요. 3김이 있었기에 YS, DJ의 10년이 가능했다고 봅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친구라도 상의하고 타협해서 끌고 갈 수 밖에 없다고 판단될 때는 끌어안았고, 안 되는 일을 부득불 하겠다고 나서지 않았습니다. 3김 정도의 정치력, 즉 판단력이 있는 정치인이 지금은 잘 안 보여서 걱정입니다. 리더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판단력과 포용력입니다. 그러한 리더십이 없을 때 결국 혼란 아니면 독재가 옵니다. 그러기에 지금 후보로 부상된 사람들은 정확한 판단력과 넓은 포용력으로 국민의 신뢰를 받아야 할 겁니다.”

-개헌 논의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습니다.
“지난 4·13 총선 결과의 가장 큰 의미는 개헌하라는 국민적 합의를 본 거라 생각합니다. 개헌을 꼭 해야 하지만 제대로 고치려면 선거 전(前) 짧은 기간에 맞추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시민단체, 학계의 개헌 관련 회의에 참석해 보면 가장 중요한 문제가 기본권입니다. 국민의 관심은 대통령제 개정에 집중돼 있고 기본권 문제는 구색을 맞추는 정도로 너무 가볍게 취급되고 있습니다. 이에 더해 중요한 지방자치 문제도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 두 가지 사안 모두가 그리 간단치는 않습니다. 공청회를 포함한 많은 논의와 타협이 필요합니다.

이번 대선에서는 개헌 공약 못지않게 선거법 개정 등 여러 문제에 대한 각 후보와 각 당의 공약을 국민들은 자세히 살펴봐야 할 겁니다.

후보들은 현재 헌법에 명시된 조항을 반드시 지키고 이행하겠다는 확실한 공약을 갖고 나와야 합니다. 제왕적 대통령제가 된 이유 중 하나는 헌법 87조에 명기한 국무총리의 국무위원 제청권을 무시했기 때문입니다. 이 조항을 지켜야 하는 큰 이유 중의 하나가 국가 최고회의인 국무회의의 정상화를 위해서입니다. 전쟁선포, 평화강화조약, 공기업과 군의 책임자 임명권 등 국가의 중요한 결정들이 국무회의 의결사항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결정된다고 알고 있어요. 민주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죠. 대통령이 자기부하인 비서관들과 상의하는 것은 자연스럽지만 특별한 법적근거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번 대선후보들은 ‘헌법87조를 절대 지킨다, 안 지키면 탄핵하라’ 이 정도로 강력하게 공약하든지 아니면 ‘지금처럼 헌법무시의 관행을 계속 유지하겠다’라든지 분명하게 밝혀야 합니다.”

-동문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탄핵정국과 대선정국의 요란하고 어려운 역사의 고비를 넘어서 다시 한 번 자신 있게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출발점에 우리국민이 함께 섰습니다. 지난 100년 우리가 세계에 보여준 한국인 특유의 대추격정신과 능력을 또 한 번 보여주어야지요. 다만 이번에는 남들의 성공을 모방하기보다는 우리의 창의력을 발휘해 지구촌 평화와 번영을 위한 대행진의 앞줄에 서겠다는, 4차 산업혁명을 한국에서 새로운 도약의 기회로 삼겠다는 범국민적 다짐을 함께 했으면 합니다.” 

 사진·정리=김남주 기자




이홍구 동문은

1934년 서울 출생. 모교 재학 중 미국으로 건너가 에모리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예일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69∼1988년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 한국정치학회장을 지냈다. 1988년 통일원장관을 시작으로 부총리, 국무총리, 국회의원, 신한국당 대표, 주영대사, 주미대사를 역임했다. 현재 서울국제포럼 이사장, 중앙일보 고문을 맡고 있다. 집필한 책으로 ‘전환시대의 위기 통일한국의 미래’, ‘인간화와 정치’, ‘정치사상과 자유의 모색’ 등이 있다.


대전환기 한국, 무엇을 해야 하나
이홍구 이사장 등 17인이 말하는 ‘코리아 리모델링’


서울국제포럼 창립 30주년을 맞아 ‘대전환의 파도 한국의 선택’이 출간됐다. 17명의 대한민국 각 분야 전문가들이 쓰고 4권의 챕터로 구성됐다. 제1부: 안보와 외교 제2부: 경제와 환경 제3부: 기술과 인재 제4부: 국가 거버넌스(Governance).


필진으로 정재호 서울대 교수, 김성한 고려대 교수, 전재성 서울대 교수, 최 강 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 홍규덕 숙명여대 교수, 박형수 한국조세재정연구원장, 이회성 고려대 교수, 정용헌 아주대 교수, 이경태 고려대 석좌교수, 김명자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 이주호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 모종린 연세대 교수, 민선식 YBM대표, 이연호 연세대 교수, 엄구호 한양대 교수, 정구현 카이스트 초빙교수, 이신화 고려대 교수가 참여했다.

이홍구 이사장은 “이 책은 대전환기 국가 개혁의 모든 분야를 망라하고 있지는 않지만, 지금과 같은 역사의 전환점에서 변화의 대상보다는 오히려 이에 대처하려는 우리의 관점과 자세를 새롭게 정리해 보자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밝혔다. 이 동문은 “‘초연결과 초지능의 혁명’을 가져온다는 4차 산업혁명, 특히 인공지능이 수반하는 문명사적 혁명의 사회·문화적 과제는 우리 모두의 생활양식을 바꿔놓을 가능성이 큰데, 이 보고서에서는 이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기울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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