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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66호 2017년 01월 (2017-01-16)

꾸역꾸역 그리는 재미

안충기(국사82-89) 중앙일보 섹션에디터 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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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부석사. 철펜에 먹물을 찍어 그렸다. 2011년 작.


2008년 우연히 시작한 펜화
펜잡는 손가락엔 철마다 굳은살
단 10분이라도 난 매일 그린다



나는 신문사에서 밥을 번다. 취미로 펜화를 그려 그간 여섯 번의 협회전을 열었다. 지면에 틈틈이 작품을 싣고 ‘비행 산수’라는 이름으로 연재도 했다. 계기는 단순했다. 2008년 3월 8일 토요일이었다. 식탁 위에 아이의 스케치북을 펴고 펜촉에 잉크를 찍었다. 오, 멋진 걸. 아내는 몇 시간을 낑낑대며 완성한 다보탑을 보며 말했다. 칭찬이었지만 속으로는 저 아저씨가 뭔 일이래, 했을 테다.
이 핑계 저 핑계로 허구한 날 술독에 빠져 사는 인간이니 말이다. 하여튼 용기를 얻었다. 

 
그 길로 그림에 빠져들었다. 퇴근해서 먼동이 틀 때까지 화판 앞에 앉아있기도 했다. 뭐에 홀린 느낌이었다. 펜을 잡는 오른손 중지는 철마다 굳은살이 벗겨졌다. 고등학생 때 놓아버렸던 그림이다. 25년이 넘었는데 감각이 돌아오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문제는 시간이었다. 아침에 출근해 밤늦게까지 일하고, 일요일에도 빠짐없이 일하는 조간신문 기자의 숙명 때문이었다. 조금씩 생활 방식을 바꿨다. 휴일이면 거실소파와 합체가 되어 뒹굴던 일상을 버렸다. 이제 온전히 쉬는 날인 토요일은 그림에 묻힌다. 새벽에 주말농장 다녀오면 그 길로 펜을 든다. (얼치기이지만 오는 봄이면 나는 농사 19년차다). 어쩌다 휴가를 내면 모든 연락을 끊고 방에 틀어박힌다. 그림을 그리고부터는 작정하고 다닌 여행 기억이 별로 없다. 필일필(必日筆) 일일일작(一日一作). 모니터 아래 써 붙인 글이다. 날마다 펜을 들고, 하루에 한 획이라도 긋자는 다짐이다. 숙취로 겨우 일어나더라도 출근 전에 단 10분이라도 펜을 들려한다. 나는 화판 위의 세상이 바깥세상보다 궁금하다. 남들보다 앞서고 위에 서고 싶은 욕심이 어느 틈엔가 희미해졌다. 어제나 내일보다 오늘이 무엇보다 중함을 깨달았으니, 그림 덕에 이나마 사람 구실을 한다. 


꾸역꾸역. 격이 떨어지고 비루한 느낌이지만 난 이 말이 좋다. 오늘도 그림을 그린다. 꾸역꾸역. 올해 예정한 그림 중 하나는 서울대학교 관악캠퍼스다. 이렇게 못 박아놔야 꼼짝 못한다. 큰일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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